GS 칼럼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서 요즘 부쩍 느끼는 게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데 정작 내 머릿속에는 목차가 없다는 사실이다. 자영업 하면서 틈틈이 스크랩해 둔 칼럼이 수백 개인데, 정작 필요할 때 꺼내 보는 건 손에 꼽는다. 스크랩 폴더를 열어보면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저장만 해둔 링크가 끝없이 이어진다. 문제는 그 ‘나중’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장하는 행위 자체가 읽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대리 만족’이라 부르는데, 정보 수집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셈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칼럼을 ‘수집’하는 대신 ‘큐레이션’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꼭 칼럼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더라. 영화나 드라마, 유튜브 같은 콘텐츠를 소비할 때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얼마 전 한 지인과 넷플릭스 추천 목록을 공유하다가 웃픈 얘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보고 싶은 영화 100편을 리스트업 해뒀는데, 정작 주말마다 뭘 볼지 고민하다가 결국 예능 다시보기만 틀어놓는다고 했다. 목록을 만드는 데 들인 정성에 비하면 실제 감상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형편없이 낮다는 것이다. 나도 비슷하다. GS 칼럼을 읽고 싶어서 북마크는 잔뜩 해놨지만, 막상 시간이 나면 어떤 걸 먼저 읽어야 할지 몰라서 유튜브 쇼츠로 도망가기 일쑤다. 정보 과잉 시대의 역설이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실행은 미뤄진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선택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선택지가 늘어나면 만족은커녕 결정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콘텐츠 소비에서도 똑같다. 넷플릭스에 수천 편이 쌓여 있는데 정작 ‘오늘 뭐 보지’ 앞에서 멈춰 서는 경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소비 전 정리’라는 루틴을 만들어봤다. 칼럼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일단 3개만 골라서 목록을 만든다. 그리고 그 3개 중 1개는 반드시 ‘내 분야와 무관한 것’으로 채운다. 예를 들어 GS 칼럼 2개와 sf 영화 1개를 묶는 식이다. 의외로 이 조합이 머리를 환기시키는 효과가 크다. 자영업자 입장에서 매출이나 상권 분석만 들여다보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기 쉬운데, 전혀 다른 장르의 콘텐츠가 그 좁아진 시야를 강제로 넓혀준다. 실제로 매장 운영에 관한 칼럼을 읽다가, 우연히 본 우주 다큐멘터리에서 ‘확장하는 우주’라는 개념을 접하고 나서 손님 동선을 짜는 방식이 달라진 적도 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영역이 머릿속에서 연결되는 순간이 바로 큐레이션의 진짜 재미다.
콘텐츠 소비에도 ‘목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콘텐츠 산업 통계를 보다가 더 확고해졌다. 국내 콘텐츠 산업 규모는 매년 커지는데, 정작 개인이 하루에 소비하는 콘텐츠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양이 늘면 질이 떨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콘텐츠 산업이 커지는 이유의 상당 부분이 ‘체류 시간 늘리기’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플랫폼은 우리가 더 오래 머물도록 설계되고, 그 설계에 길들여질수록 스스로 무엇을 보고 싶었는지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최근 ‘하루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아침에는 GS 칼럼 한 편을 정독한다. 둘째, 점심시간에는 짧은 영상 하나만 본다. 셋째, 자기 전에는 오늘 본 콘텐츠 중 하나를 골라 세 줄 요약을 노트에 적는다. 이 간단한 규칙이 의외로 콘텐츠 소비의 만족도를 높여줬다. 특히 세 줄 요약은 단순한 메모 같지만, 머릿속에 흩어진 생각을 붙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요약을 쓰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내가 뭘 얻었나’를 되짚게 되기 때문이다.
칼럼 읽기와 영화 보기의 공통점을 정리해보면 재미있다. 둘 다 ‘맥락’이 중요하다. GS 칼럼도 배경 지식 없이 읽으면 그냥 어려운 글이다. 영화도 감독의 전작이나 시대 배경을 모르면 절반의 재미밖에 못 느낀다. 그래서 나는 칼럼을 읽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이 작품이 나오기 전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를 먼저 찾아보는 습관을 들였다. 이 습관 하나로 같은 콘텐츠를 두 배로 즐길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어떤 경제 칼럼을 읽을 때 그 칼럼이 쓰인 시대의 배경을 먼저 훑어보면, 문장 하나하나가 훨씬 다르게 읽힌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감독이 왜 이 장면을 이렇게 찍었는지 배경을 알면, 그냥 지나칠 장면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자영업 하면서 손님 상대할 때도 이 ‘맥락 파악’ 능력이 은근히 도움이 된다. 손님이 왜 특정 메뉴를 찾는지, 왜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지를 맥락으로 읽어내면 대응이 훨씬 유연해진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콘텐츠를 ‘소화’한다는 건 단순히 많이 보는 것과 다르다. 같은 영화를 세 번 봐도 매번 새로운 걸 발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 편을 봐도 남는 게 없는 사람이 있다. 차이는 ‘연결’에 있다. 새로 접한 콘텐츠를 이미 알고 있던 것과 얼마나 잘 연결하느냐가 기억의 지속성을 좌우한다. 그래서 나는 칼럼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을 반드시 옆에 적어둔다. 나중에 그 메모를 다시 보면, 그때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작은 지식 지도가 만들어진다. 이게 쌓이고 쌓이면 머릿속에 나만의 목차가 생긴다. 콘텐츠 소비의 진짜 목적은 결국 이 목차를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래 표는 내가 최근 3개월간 실제로 시도한 ‘콘텐츠 소비 루틴’을 비교한 것이다. 완벽한 방법은 없고, 각자 생활 패턴에 맞는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
| 구분 | 수집형 소비 | 큐레이션형 소비 |
|—|—|—|
| 목표 | 많이 보관하기 | 적게라도 소화하기 |
| 하루 분량 | 칼럼 10편 스크랩 | 칼럼 1편 정독 + 요약 |
| 영화/드라마 | 보고 싶은 목록 50개 | 주 1편 선정 후 감상문 |
| 기억 지속성 | 거의 없음 | 2~3주 이상 유지 |
| 스트레스 | 높음 (밀린 느낌) | 낮음 (해냈다는 성취감) |
| 추천 대상 | 시간 많은 학생 | 바쁜 직장인·자영업자 |
표에서 보듯 큐레이션형 소비는 양은 적지만 만족도와 기억 지속성이 훨씬 높다. 물론 수집형 소비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자료 조사나 연구 목적이라면 수집도 필요하다. 다만 일상에서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챙기려면 큐레이션이 낫다는 게 내 경험적 결론이다. 실제로 나는 이 루틴을 시작한 뒤로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시간이 하루 평균 40분가량 줄었다. 대신 그 시간에 칼럼을 읽거나 노트에 생각을 적는다. 40분이 짧아 보일 수도 있지만, 한 달이면 20시간이 넘는다. 그 시간에 칼럼 서른 편을 읽거나 영화 네 편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숫자로 환산해보면 큐레이션의 효율이 훨씬 실감 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큐레이션이 지나치면 ‘소비 강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일이 너무 바빠서 칼럼 한 편 읽을 시간도 없다. 그럴 때 ‘오늘 루틴을 못 지켰네’ 하고 자책하면 오히려 역효과다. 자책이 반복되면 콘텐츠 자체를 멀리하게 되고, 그러면 원래의 취지마저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주 7일 중 4일만 지켜도 성공이라고 스스로 규칙을 완화했다. 자영업 하면서 완벽주의로 번아웃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콘텐츠 소비에도 ‘적당히’의 미학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오히려 규칙을 느슨하게 두면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오래간다. 완벽한 하루보다 지속 가능한 하루가 낫다는 게 요즘의 생각이다.
한 가지 더. 최근에는 칼럼을 읽고 나서 관련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교차 소비’도 재미있다. 예를 들어 도시 재생에 관한 GS 칼럼을 읽으면, 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다큐를 찾아본다. 그러면 칼럼에서 얻은 지식이 이미지와 함께 각인된다. 글로만 접한 개념이 화면 속 풍경과 겹쳐지는 순간, 그 개념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런 방식은 위키백과의 도시 재생 항목 같은 기본 개념을 먼저 훑어두면 더 효과적이다. 개념을 알고 나서 콘텐츠를 접하면 이해 속도가 다르다. 마치 지도를 먼저 펼쳐놓고 여행을 떠나는 것과, 아무 정보 없이 길을 나서는 것의 차이와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콘텐츠 소비에도 ‘목차’가 필요하다. 무작정 많이 수집하기보다, 나만의 큐레이션 규칙을 만들어 적게라도 제대로 소화하는 게 낫다. GS 칼럼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중요한 건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나는 앞으로도 하루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면서, 가끔은 원칙을 어기면서, 느긋하게 콘텐츠를 즐길 생각이다. 여러분도 각자 생활에 맞는 ‘콘텐츠 목차’를 한번 만들어보시길. 생각보다 삶이 가벼워진다.